
조선시대는 성주목(군)에 속해 있었으며 관내에 있는 시루봉(甑峰)의 이름을 따서 증산면이라 칭하였고 37개동을 관할하였다. 1895년 지방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성주군 외증산면과 성주군 내증산면으로 나누어졌다.
그 뒤 1906년에 내증산면은 지례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에 다시 외증산면도 지례면에 병합 되었다. 한편 내증산면은 증산면이라 개칭하여 김천군에 편입됨과 동시에 29개동을 부항· 동안·황정·평촌·유성·금곡·황정·수도·장전·황점의 10개동으로 통합 개편되었다.
1949년에 김천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금릉군 관내에 들었다. 1973년 유성동을 1, 2동으로 분할하여 11개동이 되었다.
김천시 남단에 위치하며 경북·경남의 도계를 이루며 김천시청에서 면 소재지인 옥동까지는 32km거리이다. 동은 성주군, 서는 대덕면, 남은 경남 거창군, 북은 지례면과 접경하고 있다. 면 주위가 수도산(1,317m)·단지봉(1321m)·목통령·형제봉(1022m)·삼방산 등 고산준령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산의 면적이 전체 넓이의 86.5%를 차지하는 김천시 제일의 산간오지 이다. 북의 황항 및 부항리에서 발원된 남암천과 서의 수도산에서 발원한 대가천, 그리고 남의 황점 및 장전리에서 비롯된 목통천이 흘러 면 소재지 아래에서 합수하여 옥류천을 이루어 성주군 방면 동쪽으로 흐르고 이들 가천 양안에 좁은 들이 이루어져 있다.
무주∼대구간을 연결하는 30번 국도가 면을 동서로 지나고, 지례면 속수 앞 3번 국도에서 갈라져 나온 903번 지방도가 면을 남북으로 달리어 장전리에 이르고 이 두 도로가 면소재지에서 교차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불령산(수도산)에 천년 고찰인 청암사와 수도암이 있고 경치가 뛰어난 골짜기가 많아 관광지로서의 전망이 밝은 편이며, 면 전체가 고지대인 관계로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길고 추운 편이다.
증산의 증(甑)은 시루가마를 뜻하는 것으로 부항의 부(釜)와 무관하지가 않다. 그것은 부산- 대증(大甑)에서 가마와 시루가 같은 개념으로 통용됨을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본디 성주쪽에 가깝기는 하지만 그 계열로 보아 그렇다는 줄거리다.
조선시대에는 성주목 증산면에 속한 황항, 임평으로 1895년에 증산면이 양분되면서 성주군 내증산면에 귀속되었고, 1906년에 황정리의 일부를 편입하여 이름은 그대로 황항리라 하고 지례군 내증산면 관할로 옮겼다가 1914년에 황항과 임평이 통합되어 황항리라 칭하여 김천군 증산면 관내가 되었다. 증산면 북단 산간 오지에 있어 버스가 다니지 않는 마을로 면 소재지와는 6.5km 거리이며, 부항리에서 동북쪽으로 갈려 들어간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남암천의 발원지이며 동은 성주군 금수면, 남은 황정리, 서는 부항리, 북은 지례면과 접경하고 있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조선시대에는 성주목 증산면에 속한 월도·한적·시동이라 불리던 마을로 1895년에 증산면 이 양분되면서 성주군 내증산면에 귀속되었다. 1906년에 지례군 내증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에 위 3개 마을과 신기를 합하여 부항리라 개칭하여 김천군 증산면 관내가 되었으며, 병자년(1936년) 대홍수 때 신기에 살던 수재민이 이주하여 이전부락과 새마의 두 마을이 새로 형성되었고 주막뜸이 추가 되었다.
증산면 북단 산간오지의 골짝에 산재하는 7개의 마을로 면 소재지에서 3∼4km 거리이다. 지례면 속수에서 가목재를 넘어 면소재지로 연결되는 6번 군도가 지난다. 동은 황항리, 서는 대덕면, 남은 황정리와 동안리, 북은 지례면과 접경한다. 증산의 증(甑)-이 가마부(釜)의 부항과 걸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부항의 옛 이름이 대증(大甑)이니 여기서도 증-부의 대응성이 찾아진다. 흔히 방언에 시루를 시루가마라고도 이름은 이러한 뒷받침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조선시대에는 성주목 증산면에 속한 상동·하동·월포·조산이라 불리던 마을로 1895년에 증산면이 양분되면서 성주군 내증산면에 귀속되었다. 1906년에 지례군 내증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에 위 4개 마을을 통합하여 동안리라 개칭하고 김천군 증산면 관하가 되었다. 서쪽에는 험준한 고드름산 줄기가 있고 동에는 황항리에서 발원된 남암천이 남류하고 산촌치고는 들이 넓은편이다.
면 소재지에서 북으로 2km 떨어진 거리인데 903번 지방도로 연결된다. 동은 황정리, 서는 대덕면, 남은 평촌리, 북은 부항리와 접경하고 있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조선시대에는 성주목 증산면에 속한 황정·봉산·고동이라 불리던 마을로 1895년에 증산면이 양분되면서 성주군 내증산면에 귀속되었다. 1906년에 지례군 내증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에 위 3개의 마을과 풍령이 통합되어 황정리라 개칭하여 김천군 증산면 관하가 되었으며, 1936년 병자년 대홍수 뒤에 수재민이 모여서 신기마을을 새로 이루었다.
동은 월출산 줄기가 달리고 서로 갈수록 낮아진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야산지대에 산재하는 4개의 마을로 풍령을 제외한 면소재지에서 1∼2km 거리에 있다. 동은 성주군, 서는 동안리, 남은 유성 1·2리, 북은 황항리와 접경한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조선시대에는 성주목 증산면에 속한 평촌·장평·추령의 세 마을로 1895년에 증산면이 양분되면서 귀속되었다. 1906년에 지례군 내증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에 평촌·장평 ·추령이 통합하여 평촌리라 칭하여 김천군 증산면 관내에 들었다. 남·서·북의 삼방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동은 평야로 되어 있으며, 천년 고찰인 처암사가 있으며 면소재지와는 30번 국도로 1.5km 거리이다. 가랫재·청암사골·수도리의 세 골짜기에서 발원된 3개의 개천이 장평 남쪽에서 합류하여 대가천을 이룬다. 서는 대덕면, 남은 수도리, 북은 동안리와 산으로 접경하고, 동은 유성1리와 이어져 있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조선시대에는 성주목 증산면에 속한 수도 마을로 1895년에 증산면이 양분되면서 성주군 내증산면에 귀속되었고, 1906년에 지례군 내증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에 수도리라 칭하여 김천군 증산면 관내가 되었다. 증산면 남서쪽 끝을 점하여 서쪽 수도산(1317m)에는 고찰 수도암이 있고 남에는 단지봉(1321m)이 있는 산간오지에 위치한 마을인데 면 소재지 와는 8km 거리이고 교통이 극히 불편하다. 해발 800m의 높은 지대로 여름철에도 개울물이 차다. 동은 금곡리와 황점리, 서와 남은 경남 거창군, 북은 평촌리와 접경하고 있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조선시대에는 성주목 증산면에 속한 옥동 마을로 1895년에 증산면이 양분되면서 성주군 내증산면에 귀속되었다. 1906년에 지례군 내증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에 옥동·유성 ·지소를 통합하여 유성리라 개칭하여 김천군 증산면 관내에 들게되었다. 1973년 유성, 지소가 분동해 나가고 옥동이 유성 1리가 되었다.
김천도심에서 32km 거리인 면소재지 마을로, 마을 뒤에 증산면을 상징하는 시루봉(증산)이 솟아 있다. 수도산과 황항리에서 다르게 발원된 대가천과 남암천이 마을에서 합류하여 옥류천을 이루어 동으로 흐르고 주위의 들이 넓다. 동은 유성 2리, 서는 평촌리, 남은 금곡리, 북은 황정리와 접경하고 있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조선시대에는 성주목 증산면에 속한 금곡·개정지·거물 마을로 1895년에 증산면이 양분되면서 성주군 내증산면에 귀속되었다. 1906년에 지례군 내증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에 금곡·개정·거물리 주변에 산재하는 작은 마을을 통합하여 금곡리라 개칭하여 김천군 증산면 관하가 되었다. 동과 서는 높은 산지로 되어 있고 리의 중간부에 목통천이 북으로 흐르며, 그 냇가에 좁은 들이 형성되고 이 들을 따라 903번 지방도가 남북으로 지나고 있다.
원금곡에서 면소재지까지는 북으로 3.1km이다. 동은 성주군, 서는 수도리, 남은 장전리와 황점리, 북은 유성1·2리와 접경하고 있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조선시대에는 성주목 증산면에 속했던 장전·청천·송계의 세 마을을 일렀다. 1895년에 증산면이 양분되면서 성주군 내증산면에 귀속되고, 1906년에 지례군 내증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청천·송계·선무기·마고실과 그 주변의 작은 마을을 통합하여 장전리라 개칭하여 김천군 증산면 관내가 되었다. 증산면의 남동 끝에 위치하여 동남북을 에워싼 높은 산이 서로 갈수록 낮아져 마을의 서쪽은 넓은 계곡을 이루고 있다. 장전리와 황점리에서 발원된 목통천의 지류가 이 계곡을 따라 북류하고, 그의 양안에 꽤 넓은 들이 형성되어 있다.
면 소재지와는 903번 지방도로 6km 거리이며, 동은 성주군, 남은 거창군, 북은 금곡리와 접경하고 있다. 이곳에 있는 청천·마고실하면 이보다 더한 산촌이 다른 곳에도 있으나 김천지역에서는 벽지의 대명사로 통용되고 있다. 마고실은 마지막골이라는 뜻으로 막다에서 비롯한 이름으로 볼 수 있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조선시대에는 성주목 증산면에 속한 황점·초동·문례·죽항이라 불리던 4개 마을로 1895년에 증산면이 양분되면서 내증산면에 귀속되었고, 1906년에 지례군 내증산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에 황점·초동·문례·죽항과 석장을 통합하여 황점리라 개칭하여 김천군 증산면 관내가 되었다.
증산면의 남쪽끝인 산간오지의 작은 마을로 면소재지에서 7.5km 거리이다. 동은 형제봉 (1022m), 서는 단지봉(1321m), 북은 새목양지(984m)가 둘러싸고, 북동쪽으로 골짜기가 트여 목통천의 상류가 흐르고 교통이 매우 불편하다. 동은 장전리, 서는 수도리, 북은 금곡리, 남은 거창군과 접경하고 있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