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 김산군 서쪽 끝 지역인 대항 12 방의 중심지는 면 행정복지센터가 있는 터목(垈項)이었다. 한자로는 대항(垈項)으로 표기하고 본리라 했으며, 뒤에 대항(代項)으로 고치고 20동을 거느렸다. 1906년 황간군 황남면의 6개동(지천, 묘내, 광암, 방하상, 세송, 돌모응)과 봉산면의 하지리의 일부를 김산군에 편입하여 관내를 삼았다. 1914년에 26개동을 향천. 덕전. 대룡. 운수. 주례. 대성의 6개동으로 통합하였고, 1973년에는 봉산면의 복전동을 대항면으로 들게 하여 7개동이 되었다. 이에 앞서 1971년에는 다시 복전 2, 대룡 2, 덕전 4, 대성 2, 주례 2, 운수 3, 향천 4개동 등 19개동으로 나누었다.
충북 영동군과의 도(군)계를 이루고, 서남쪽으로 구성면, 동북쪽으로 봉산면과 경계하며, 김천시가지와는 동쪽에서 인접하고 있다. 동쪽 2개동(대룡, 덕전)을 제외하고는 서남쪽은 대부분이 산악지대에 속하고 동서를 지나는 경부선 철도, 4번 국도가 서쪽 산악지를 피해 북쪽으로 굽어서 니은자 형으로 지난다.
면의 서쪽에 천덕산. 황악산(1,111m). 바람재. 삼성산 등의 높은 산이 이어져 경계를 이루며, 남서쪽에 호초당산(894m), 남동부에 덕대산(811m)과 같은 험준한 산지로 되어 있어 면의 대부분이 산악지대를 이루고 있으므로 경작지가 적어 경지률이 15.6%밖에 되지 않는다. 면의 북동부의 들을 중심으로 한 경지정리가 이루어져 중요한 농업지대를 이루며 포도 생산의 중심이 되고 있다.
관내에 신라 사찰인 직지사(直指寺)가 있고, 절의 진입도로가 직지천의 양쪽으로 개설되어 관광객의 내왕이 편리하다. 오늘날에도 터목이 있음을 보면 그에 상응하는 한자 대항(垈項)으로 씀이 옳을 것으로 본다. 다시 고쳐 쓰는 과정에서 간편하게 하기 위하여 대(垈)에 흙 토를 제외했을 것으로 미루어는 보이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황간군 황남면에 속한 지천인데, 1906년에 김천군 대항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에 지천. 합천. 묘내. 방하치를 통합하여 향천동이라 하고, 1971년에 지천을 향천 1동으로 나누었고, 1988년에 동을 리로 변경하였다.
1976년에는 직지사 입구 매표소 녹지대에 있는 상가를 지금의 장소로 옮겨 조성했다. 황악산과 바람재에서 발원한 준용하천인 직지천이 북쪽으로 흘러 마을을 동서로 나누고 있고, 동쪽으로 덕전리와 인접하고 있다. 마을 북서쪽으로 운수 1리와 접하여 직지사가 위치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향천 4리에 접하고 있으며, 북쪽으로 향천 2리와 접하여 대항면 행정복지센터가 위치하고 있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약 200년 전부터 직지사를 찾아왔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근처 골짜기에 정착하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대항면(垈項面) 행정복지센터가 이곳에 있었다. 그래서 마을이름을 터목이라 했으며, 그 뜻으로 한자 표기를 대항면이라 했으며, 또 면 중심지이기에 마을을 본리로도 불렀다.
1914년에 본리와 돌모리. 백운동(박수점)을 통합하여 운수동이라 했다. 1971년 본리를 운수 1동으로 나누었고 1988년에 동을 전국적으로 리로 변경하여 운수리가 되었다. 1932년에 경찰관 주재소를 직지사역으로 옮겼다가 광북 후 향천 2리로 옮기고, 면 행정복지센터는 1920년에 옮겼다.
면소재지에서 서쪽 1.2km 황악산 남쪽 운수골짜기, 들머리에 있는 산간마을로 직지사 상가와는 500m 지점이다. 황악산 북쪽 모퉁이를 돌면 신라 고찰 직지사가 있고 그 뒤에는 백련암. 운수암이 있으며, 마을 앞에 김천시 상수도 수원지가 있었다. 운수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대성리에 이른다.
행운유수(行雲流水)와 같이 언제나 구름이 머물고 골짜기에 물이 흐르는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자 한 이름으로 보인다. 하지만 본래의 이름이었던 터목이야 말로 삶의 터전이었으니 더 좋은 이름을 찾기란 어려울 것으로 본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조선시대에는 김산군 대항면에 속한 화실(화곡)이었는데, 1914년에 주공. 삼거와 통합하여 주례동이라 하고, 1971년에 화실(화곡)을 주례 1동으로 나누었다. 산으로 둘러 싸여 경치가 좋으며 물이 맑고 공기가 시원하여 생활환경이 쾌적하다. 논농사 위주에서 벗어나 담배를 소득작목으로 선정함으로써 담배 재배 면적이 늘어나 주민 소득증대에 이바지하고 있다. 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서남쪽으로 7.2km 떨어지고 대항면 서쪽 가장자리로 황악산(1111m)과 덕대산(811m)의 사이에 바람재를 넘어서 산간 오지에 있는 마을이다. 서쪽은 영동군 상촌면과 인접하고, 남쪽은 구성면과 이웃한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1750년 이씨. 박씨. 김씨의 세 선비가 조용하고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선비들이 존경하던 성인 공자의 이름을 따서 공자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김산군 대항면에 속한 공자동이었는데, 1914년에 공자동. 사기점. 버덕(벌덕)과 창평. 방하를 통합하여 대성동이라 했다. 1971년에 공자동. 사기점을 대성 1동으로 나누었고, 1988년에는 동을 리로 고쳤다.
남동쪽으로 구성면과 경계하며, 북서쪽으로 직지사로 통하고 대항면의 제일 오지부락으로 마을앞으로 주례천을 끼고 있어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면 소재지에서 남쪽 동구지산(656m) 넘어 떨어진 구성면으로 통하는 군도가 열렸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대항면 남쪽 끝에 자리하고 있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옛날부터 김산군 대항면에 속한 점곡이었는데, 덕대산 아래에 있어 덕산이라 했다.
1914년에 이웃마을인 죽전. 대사. 세송. 왕대. 신평을 통합하여 덕전동이라 하고, 1971년에 덕산을 덕전 1동으로 나누었으며 1988년에 동을 리로 변경했다.
면 소재지에서 남으로 5.7km 떨어진 야산지대이며 덕산 저수지를 중심으로 여러마을이 인접해 있다. 북쪽으로 마을 앞에 덕산저수지가 있고, 경부선 철도가 지난다.
남쪽은 덕대산(811m)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오룡산, 서쪽도 산으로 막혀 있다. 북쪽은 대룡리와 접하고, 동쪽은 산을 경계로 김천시 다수동과 인접한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조선시대에는 대항면에 속한 새터로 마을 이름이 되었다. 1914년에 다수동의 이로리 일부와 파미면 하지리 일부 그리고 행점. 용복을 통합하여 대룡동이라 하고, 1971년에 반곡을 대룡 1리로 나누었고, 1988년에 동을 리로 변경했다. 다수동과 인접한 마을로 넓은 평야지대에 위치한 반곡으로 면 소재지에서 동으로 3.8km 떨어졌다.
대항면의 동쪽 큰 들판 끝에 있고, 남으로는 덕전리의 큰 못을 등지고 멀리 덕대산이 보이며, 북쪽은 들 가운데로 4호 국도와 멀리는 경부고속도로가 지난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조선시대에는 황간현 황남면에 속한 하마전인데, 1906년에 파미면에 편입되었고 1914년에는 상마전. 복산과 통합하여 복전동이 되어 봉산면에 소속되었다가 1973년에 대항면으로 편입 되었다. 이보다 앞서 1971년에는 하마전을 복전동으로 나누었고, 1988년에는 동을 리로 변경 했다.
1590년 지금의 복전부락이 커지며 충주박씨의 집성마을이었고 이어서 전의이씨가 이주하여 이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지금은 경주이씨들도 살고 있다.
마전부락은 해발 100m 이하의 평야지대로서 마을 상부에 저수지가 위치하고 있어 영농에 큰 도움을 주고 있으며 국도, 지방도가 인접하여 교통이 편리하며 기후가 온화한 마을이다. 직지사로 들어가는 길옆 큰 마을인데 경부선 철도가 마을과 인접하여 동서쪽으로 지나고 있다. 면소재지는 남으로 1.3km 떨어져 있으며 주변 경관이 좋아 취락구조 개선으로 더 아름다운 마을이 되었다. 복전이라 함은 절간에서 부처님 앞에 정성껏 물질을 놓는 곳을 이르니 필시 이 마을도 절과 관련하여 생긴 마을이 아닌가 한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