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시 어모면

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쉬는 우리고장 어모면

지명유래

삼한시대 이전은 미상이나 구전으로는 어모국(禦侮國)이 있었다고 전한다. 삼국시대에는 금물현(今勿縣)이었고 통일신라시대(경덕왕 16년)에 어모현으로 개칭하여 개령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경산부(京山府. 星州)에 일시 예속되었던 적도 있었다. 조선조 태종 13년(1413)에 정종(定宗)의 태(胎)를 봉안하였다 하여, 1416년 어모 김산을 합하여 김산군이라 칭하였고, 이 지방은 천상면. 천하면. 구소요면이 되었다.

1914년 김산을 김천군이라 개명하였고, 1920년 천상면. 천하면을 합하여 아천면이라 하였으며, 1934년 아천면과 구소요면을 합하여 어모면이라 칭하고 그 관하에 13개동을 두었다. 1949년 김천시 승격으로 금릉군이라 하였고, 1971년 행정 23개동으로 정하고, 1983년 김천시 확정으로 응명동이 시로 편입되어 법정 12개동에, 행정 21개 동이 되었다. 1988년에 동이 리로 바뀌었다.

김천시 북쪽 끝에 자리하며 동쪽은 감문면과 개령면에 인접해 있고 남쪽은 김천 시가지에 접경하였다. 서쪽은 봉산면과 충북 영동군과 경계를 이루었으며, 북으로는 상주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어모면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대부분 산악지대에 걸쳐 있다. 난함산과 용문산의 발원인 어모천이 면 중앙부로 남쪽으로 흐르고 있고 또 3번 국도와 경북선 철도가 남북으로 중심부를 지나며 어모천 하류 연안에는 평야를 이루고 있다. 지명 변경의 과정을 보아 어모 - 감천 - 음달 - 금물이 같은 이름임을 볼 때 감 - 검 - 어모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음을 상정할 수가 있다.

어모는 어머니임을 앞에서도 풀이하였는 바 물과 땅신 곧 지모신을 드러내는 것이며 기원적으로는 능치(能治) 혹은 능점(能店)의 곰(能-熊)마을에서 비롯한 것이 뒤로 오면서 거북이와 접합되어 쓰이게 된 이름으로 볼 수 있다.

중왕리

원래는 면사무소 부근인 마람들과 인근의 서명골. 용왕골. 넘박골 등 조그만한 마을인데 1923년 경북선 철도 아천역 개설로 발달한 고장이다. 조선시대에는 김천군 천하면 중중리에 속한 지역인데 1914년에 하리와 합하여 중왕동이라 하고 아천면에 편입되고, 1934년에 신설된 어모면에 예속되었다. 1971년에 아천으로 불리는 지역은 중왕 1리로 분동하고 1988년 동을 리로 바꾸었다.

중왕 2리인 봉학골(중중리)은 원래 탑시들에 있었는데 조선시대 큰 홍수로 지금의 위치로 옮겼고 삼한시대에는 어모국의 수도 아산(牙山)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선시대에 김천군 천하면에 속했는데 1914년에 신설된 아천면에 편입되고 1934년에 신설된 어모면에 들었다. 1971년에 아천으로 불리는 지역은 중왕 1리로 분동하고 중중리 하리는 2리가 되었다.

김천에서 북으로 8km 떨어진 면소재지 부락으로 3번 국도와 경북선 철도에 아천역이 개설되고 발달한 시골 상가지로 지서. 농협. 학교. 우체국. 보건지소 등 기관이 들어선 어모면 중심지이다. 동쪽에는 어모천이 남쪽으로 흐르고, 중왕 2리로 이어지면 남쪽은 남산리요. 서로는 옥율리가 인접하고 북쪽으로는 동좌리로 이어진다.

  • 봉악골. 보악골. 봉하골(鳳下谷). 아산골(牙山谷). 중중리
    • 신라때 어모현의 소재지였고 뒷산이 봉황의 형상인데 그 밑에 있는 마을, 즉 봉아랫골이라는 뜻으로 봉하골이라 하며, 중중리는 중왕동의 중심이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고, 아천의 옛이름이 아산이므로 아산골이라 했다 한다.
  • 오거리
    • 사방으로 갈려지는 교통 요지에 새로 형성된 마을로 상점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옥율리

이 마을에 500년 묵은 느티나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된 마을로 여겨진다. 1654년 진주 강씨 선태가 연기 용호에서 들어왔고, 1729년 정선정씨가 택룡이 대항 세송에서 입주하였고, 1746년 밀양박씨 광로가 거창 가북 홍감에서 입건하고 1819년 김해김씨 태식이 도암 본리에서 옮겨 왔다. 1924년 김해김씨 상영이 구성 양각에서 이주하였으며, 김해김씨 일파도 일찍 들어 왔다.

율리는 1630년 김해김씨 응호가 상주에서 입거하였고, 1907년 상산전씨 기장이 본면 상남에서 이거하여 마을이 이루어졌다. 옥률리는 노옥. 긍천. 율리. 대밭 양지 4개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어모현이었으나 1416년 김산(김천)군 천상면에 속하였으며, 1920년 천상면과 천하면을 합하여 아천면이라 하고 노옥. 긍천. 율리를 통합하여 옥률동이라 하였고, 1934년 아천면과 구소요면을 합하여 어모면이라 하였다. 1949년 군명을 금릉이라 하 였고, 1988년 동을 리로 바꾸었다.

어모면 소재지 아천에서 남으로 3번 국도변에 대밭 양지마을을 지나 서쪽으로 들어가면 흩어져 있는 3개 마을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서쪽은 문암봉(589m)이 막아 있고, 문당동을 경계로 남쪽은 남산 1리이며, 동쪽은 중왕리와 아천이 인접한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 노리기. 노옥(老玉)
    • 진주강씨와 김해김씨가 많이 살고 있는 100여 가구가 넘는 큰 마을로, 강노옥이란 사람이 마을을 개척했기 때문에 노옥이라 하며 속칭 노리기라 부른다. 노리기란 강씨 노인, 즉 노리가 산다 하여 노리기라 했다 하며, 양계. 양잠을 많이 했던 마을이다.
  • 밤주골. 율리(栗里)
    • 노리기 북동쪽 산기슭에 15가구 가량의 집들이 있었는데, 옛날 김율리라는 사람이 이 곳에 집을 짓고 밤나무를 많이 심었다 하며 밤을 줍는 골이라는 뜻으로 밤주골이라 한다. 지금도 김해김씨가 많이 살고 있으며 특히 양잠을 많이 했다.
  • 자랑내. 긍천(矜川)
    • 노리기와 밤주골에서 내려오는 개천이 합수된 지점을 자랑내라 하는데, 이곳에서 옛날 규석과 사금이 산출되었고, 또 강진휴라는 사람의 효자비도 냇가에 있어 자랑스런 내란 뜻에서 자랑내라 했다.
  • 대밭양지
    • 자랑내 북쪽 모퉁이에 있는 마을로 대나무밭이 있어 지어진 이름이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남산리

1612년 성산전씨 순석이 감문 속문에서 이주하였고, 1785년 파평윤씨가 들어와 상남마을이 이루어졌다. 지산은 1636년 능성구씨 인리가 능성에서 이주하였고, 1840년 진주강씨는 감문 이천에서 들어왔으며 1864년 김해김씨 천식이 하남에서 이주하여 마을이 이루어졌다. 광야 마을은 1948년 진주강씨 경학과 일선김씨 수봉이 지방에서 이주하여 마을을 개척하여 이루어졌다.

남산 1리는 상남. 지산. 광야 3개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어모현이 었는데, 1416년 김산현이 군으로 됨에 따라서 어모현이 흡수되고 천상면. 천하면. 구소요면으로 분리되어 상남은 천상면 소재지 마을이 되었다. 1914년 김산군이 김천으로 개명되었고, 1920년 천상면. 천하면을 합하여 아천면이 되면서 하남. 길계를 통합하여 남산동이 되었고, 1934년 아천면과 구성요면을 폐합하면서 어모면이 그 관내에 속하였다. 1949년 군을 금릉이라 개명하였다. 1971년 상남. 지산. 광야를 남산 1동으로 나누었고 1988년 동을 리로 바꾸었다.

어모면 소재지에서 남으로 3km쯤 떨어져 산재된 3개 자연부락이다. 경부선 철도와 3번 국도가 마을 앞을 남북으로 지나가며, 동으로는 남산 2리, 서쪽은 김천시와 경계를 이루고, 북으로는 중왕리에 인접하고 서쪽은 옥율리로 이어진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 상남(上南). 하남(下南)
    • 면 소재지에서 남동쪽으로 1.6km 지점이며 상남은 본래 천상면 소재지였으나, 남상동중 위쪽에 있어 상남이라 하고, 성산전씨, 정선전씨 등이 살고 있는 140가구 정도의 큰 마을이며, 하남은 상남에서 700m 가량 아래쪽에 위치한 100여 가구 되는 마을로 김씨가 많이 살고 있다.
  • 모산. 지산(池山)
    • 이 마을에 둥둥못 또는 등대지. 한지. 대야지라 부르는 못이 있는데 시대 미상이나 이 곳의 아들 8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크게 득세하니 나라에서 반역을 우려하여 그 집을 헐고 못을 팠다 한다. 이 못으로 인하여 마을 이름을 지산이라 했고, 모산은 못 안이 변음된 것이며, 둥둥지는 등등지의 변음이고, 등등은 아들마다 등과했다는 뜻이며, 한지. 대야지는 큰 못이라는 뜻이다.
  • 길기. 질기. 길계(吉系)
    • 하남에서 200m 가량 떨어진 곳으로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천하 명당이라 한다. 길계는 좋은 계곡이란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고 길기는 길계의 반음이며, 질기 또는 길기로 부르며 15가구 정도의 작은 마을이다. (김련규 <56> 외 1명).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다남리

예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다고 전해 오며, 1688년 벽진이씨가 하로에서 옮겨 왔으며, 1799년 일선 김씨 명주가 선산에서 들어와 살았으나 동산 마을은 벽진이씨의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도동은 1711년 의흥예씨 동일이 청도에서 이주하였고, 1783년 밀양박씨 수경이 영동 심천 고당에서 이주하였으며, 1914년 경주이씨 규태가 선산 고아에서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다.

다남 1리는 동산. 도동 두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어모현이었으며, 1416년 김산군 천하면에 속했다가 1920년 천하면과 천상면을 합하여 아천면이 되고 진목. 오청을 통합하여 다남동이 되었다. 1934년 아천면과 구소요면을 통합하고 어모면이라 하였으며, 1949년 군명을 금릉이로 하였다. 1971년 동산. 도동을 다남 1동으로 나누었고, 1988년 동을 리로 바꾸었다.

어모면 소재지에서 3km 떨어진 평야지대에 있는 마을이다. 동쪽의 어모천이 동남간으로 흐르고 그 연변에서 동산 앞에 다남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개령면과 감문면의 경계를 이루고 남쪽은 다남 2리에 인접하고, 서로는 남산리이며 동쪽은 어모천을 경계로 중왕 2리와 군자리가 된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 동사이. 동산(東山)
    • 고려 말까지는 천하면에 속해 있었으며, 어모현 동쪽 산이라 해서 동산이 동사이로 변음되었고, 벽진이씨가 많이 살고 있는 60여 가구의 마을로 예로부터 교육 수준이 높고 예의바른 양반이라 하여 다른 이들의 칭송이 자자한 곳으로 지금도 예의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 도금모리. 도구머리. 도동(道洞)
    • 신라말의 도선이 풍수지리설로 풀이해서 도금모리라 했다 하는데 도금산이란 뜻이며 예씨가 주로 살고 있다.
  • 참나무골. 진목(眞木)
    • 1590년 무렵 이 심이 십승지의 하나로 지적한 곳이라 한다. 참나무가 많아 참나무골이라 했으며 독립 투사 편강열 의사가 한 때 거처한 곳이기도 하다. 초대 면장 최팔천이 자식 없음을 한탄하여 동명을 다남이라 개칭했다.
  • 오청계(五淸溪)
    • 1820년경 이 마을에 천 석을 넘기는 다섯부자가 살았는데 마을 앞 개천 제방에 다섯그루 의 버드나무가 무성하여 마치 다섯부자를 상징하는 듯하여 오청계라 불렀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군자리

하덕 마을은 500년 된 은행나무가 있고, 서산정씨가 살았다고 전해 오는 것을 미루어 보면 오래된 고장으로 보인다. 1594년 밀양박씨 대현이 임진왜란을 피하여 조모를 모시고 금산에서 이주하였고, 1894년 정선전씨 인우가 영동에서 이거하여 마을이 형성되었으나, 박씨 집성촌을 이루고 평촌은 1708년 수원백씨 봉래가 김산 구읍에서 입주하였고, 1805년 평산신씨 영희가 인동 약목에서 입거하였으나 지금은 그 자손이 거의 떠나고 한 집만 살고 있다.

들말은 수원백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덕림은 편씨가 살았다고 전해오며, 1724년 경주 이씨 명철이 입향하였고, 밀양박씨는 하덕에서 이거하였고, 김해김씨도 일찍 입향하였다.
원당은 1946년 밀양박씨 희대가 덕림에서 이주해서 마을을 개척하여 형성되었다.

군자리는 하덕. 평촌. 덕림. 원당의 4개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어모현에 속하였다. 1416년 김산군 천하면이 되었고 1920년 천하면, 천상면을 합하여 아천면이 되면서 하덕. 평촌. 덕림을 통합하여 군자동이라 하다가, 1934년 아천면과 구소요면을 통합하여 어모면이라 칭하고 그 관내에 속하였다.
1949년 군명이 금릉이 되고, 1988년 동을 리로 바꾸었다. 어모면 소재지에서 동북쪽으로 2∼ 3km 떨어져 있는 4개 마을이다. 하덕은 사방으로 산이 둘러싸여 있고, 3개 마을은 중왕 평야가 펼쳐 있고 감문면으로 가는 군도가 있으며, 어모천이 서남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서쪽은 중왕 2리에 접하고, 서남은 남산 2리와 다남 1리에 이르고 동쪽은 개령면과 감문면의 경계를 이룬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 하덕(下德)
    • 덕룡. 덕림의 아래에 있다 하여 하덕이라 했고, 이 마을에 옥배미 집수정이라는 유적이 있는 데 죄인을 수용하던 옥이 있던 곳으로 지금도 기와 파편을 볼 수 있다.
  • 들만. 평촌(坪村)
    • 중왕평야 동쪽 끝에 자리 잡은 마을로 들에 있는 마을, 즉 들마을이 축약되어 들말이 되었다. 원래 이 마을은 현재 마을의 북동쪽 풍덕골이라는 골짜기에 있었으나 화적떼들의 횡포가 심해 이곳으로 이주했다 한다. 30여 가구에 수원백씨가 주로 살고, 특산물로 왕골을 많이 재배한다.
  • 들미기. 덕림
    • 이 마을은 본래 중왕평야에 있으나, 수해로 인해 매몰되고 새로 이곳에 이주하여 이룬 마을로, 들미기는 들의 입구. 즉 들목의 변음이며, 덕림은 윗마을인 덕룡 마을 밑에 숱이 울창한 곳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오청계(五淸溪)
    • 1820년경 이 마을에 천 석을 넘기는 다섯부자가 살았는데 마을 앞 개천 제방에 다섯그루 의 버드나무가 무성하여 마치 다섯부자를 상징하는 듯하여 오청계라 불렀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덕마리

오래 전부터 수원백씨가 살았다고 전해 오며 1482년 서산정씨 세린이 봉계에서 이거하였으나 후손이 거의 떠나고 현재 두 집이 살고 있다. 1627년 밀양박씨 진동이 하로에서 입거하였고, 1639년 동래정씨 경룡이 입향하였으며, 1735년 전주이씨 언묵이 상주 화서에서 이거하였으며, 1784년 수원백씨 동욱이 공성면 이화에서 입거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덕마리는 상덕. 못안. 갈마의 3개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어모현이었는데, 1416년 김산군 천하면에 속하였다. 1920년 천하면. 천상면을 통합하여 어모면이라 칭하고 그 관내에 속하였며, 1949년 군을 금릉이라 하였고, 1988년 동을 리로 바꾸었다. 어모면 소재지에서 군도를 따라 동북으로 4km 떨어진 곳에 상덕(덕룡). 못안 두 마을이 있고, 갈마는 면에서 3번 국도를 북쪽으로 1km 떨어진 마을이다.

마을 서편에 있는 갈마평야에 어모천이 남류하며, 동좌리에 인접하고 상덕. 못안은 갈마 고개를 넘으면 삼면이 산으로 가로막혀 있고, 남쪽이 트여 군자리에 이른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 덕룡(德龍)
    • 구례리에서 산 넘어 4km 떨어진 곳으로 박씨. 이씨 등이 살고 있는 60여 가구의 마을로 뒷산이 덕이 있는 용의 형상이라 하여 덕룡이라 했다 하며, 지대가 높아서 전답에 한발이 심하고 교통이 불편한 오지 마을이다.
  • 갈말. 갈마(渴馬)
    • 이 마을은 원래 덕룡 평지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병자년 수해로 인하여 현 위치로 옮겨 왔다 하며 마을을 둘러싼 산세가 목마른 말이 물을 찾는 형상이므로 갈마라 했다. 뒷산에는 움막 골이라는 계곡이 있는데 임진왜란 때 움막을 치고 피란한 곳이라 한다. 30가구 가량에 평산 신씨가 주로 산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구례리

임진왜란 당시 큰 홍수로 마을이 매몰된 일이 있다. 1709년 인동장씨 대진이 선산에서 이주하여 집성촌이 되어 있고, 하현은 전에 윤씨가 살았다고 전하며, 1704년 순흥안씨 봉흥이 대항면 왕대리에서 이거하였고, 연안김씨도 일찍 입향하여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구례 1리는 신풍. 하현 두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1416년 김산현이 승군됨에 김산군 구소요면이 되어 그 관내에 속했고, 1914년 상현. 중현. 신현. 송정. 두원. 여남 유점을 통합하여 구례동이라 하였다. 1934년 구소요면과 아천면을 합하여 어모면이라 하였고, 1949년 군명을 금릉이라 하였다. 1971년 신풍. 하현을 합하여 구례 1동으로 나누었고, 1988년 동을 리로 바꾸었다.

신풍마을 서편으로 경부선 철도와 3번 국도가 남북으로 지나가고 있으며, 동쪽 20m 지점에 신풍천이 남으로 흐르고 서쪽으로는 논밭에 둘러 싸여 있다. 신풍천을 지나 북동으로 700m 가면 산밑에 하현 마을이 있으며, 어모면 소재지에서 5.5km 떨어져 있다. 동쪽 산을 경계로 감문면 도명리에 이르고, 서남쪽으로는 들과 산을 경계로 도암리가 되며 북으로는 구례 2리에 인접한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 말무덤. 신풍(新豊)
    • 이곳에 약 50년 전에 면사무소가 있었던 곳이며, 옛날 이 마을 서쪽 골짜기에 철방이 살았 으며, 말이 죽으면 이 마을 중간의 구릉에 묻었다고 해서 말무덤이라 했고, 신풍이란 이름은 새로이 풍요로운 마을을 이루자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고 약 20여 가구가 살고 있다.
  • 상현. 중현. 하현. 신현(新峴)
    • 이곳은 감문면 문무리로 넘어가는 고드리재에 윗고개. 아래고개의 두 고개가 있는데 윗고개 쪽 마을을 상현, 중간에 있는 마을을 중현, 아랫고개 쪽 마을을 하현이라 했다. 신현은 중현 밑에 새로 생긴 마을이며, 주산물은 벼이지만 포도. 자두 등의 과실과 양파. 마늘을 많이 생산하고 손씨. 안씨 등 각 성이 산다.
  • 솔정. 송정(松亭)
    • 이곳은 새로 형성된 마을로 뒷산에 소나무가 울창하여 솔정 또는 송정이라 하며, 주로 순흥 안씨가 많이 살고 주산물은 포도가 많이 생산되고 자두. 북숭아 등의 과실과 양파. 마늘 등을 많이 재배하며, 중현과의 사이에 구례초등학교가 있다.
  • 여남(汝南)
    • 1520년경 상산김씨가 이주해 살면서 지형이 중국 용문산 고도인 여남과 흡사하다하여 동명을 여남이라 하였으며 지금도 타성 한 집을 제외하고는 전부 상산김씨뿐이며 봄마다 흰 왜 가리가 찾아드는 마을이다.
  • 놋점. 유점(諭店)
    • 여남에서 북서쪽으로 1km 지점에 위치하며, 옛날 놋그릇을 만든 곳이라 하여 놋점 또는 유점이라 한다. 10여 가구에 각 성이 살며, 양봉을 많이 한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옥계리

예로부터 미륵당과 아래 윗 마을이 있었다고 전해 온다. 1988년 2월에 평산신씨 경두가 공성 영오에서 이거하였고, 밀양손씨도 같은 해 7월에 영오에서 입거하였으며, 밀양박씨 민호가 영동 심천 서금에서 영오로 이거하였는데, 아들 내언이 1889년 9월에 이주하였고, 1984년 3월에 동래정씨 기동이 영오에서 입주하였으며, 경주손씨도 일찍 입향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옥계 1리는 미륵당 한 마을로 되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어모현에 속하였는데, 1416년 김산군 구소요면이 되고, 1914년 한계(현 미륵당). 평성. 사촌. 봉대. 강변을 통합하여 옥계동이라 하였고, 1934년 구소요면과 아천면을 합하여 어모면이라 칭하였다.

1949년 군명을 금릉이라 하였다. 1971년 미륵당을 1동으로 나누었고 1988년 동을 리로 바꾸었다. 마을의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여 있는 산간 오지 마을이며, 어모면 소재지에서 10.5km 어름에 위치한 곳이며 북쪽은 상주시 공성면 영오리로 경계를 삼고 있다. 서쪽은 능치 1리에 접하고 남쪽 아래로 내려가면 남북으로 통하는 군도가 유일한 교통이며, 그 도로를 따라가면 옥계 2리에 이어진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 미륵댕이. 미륵당. 한계(閑溪)
    • 마을에 미륵석불이 있어 미륵댕이 또는 미륵당이라 하였고 한계는 한가로운 계곡이란 뜻으로 쓰이는 이름이다. 여기 있는 미륵불은 영험이 있어 1953년 무렵까지도 상주군 공성. 모동. 청리 등지와 멀리로는 충북 영동. 황간 등지에서 불신자들이 많이 찾아왔다고 한다.
  • 평성(平城)
    • 평택임씨가 처음 개척한 마을로 아천에서 8km 떨어진 곳이며, 마을이 들가운데 있고 뒷산의 모양이 성과 같다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임씨. 김씨 등 30여 가구가 논밭 농사외에 양봉과 포도 재배 등 복합영농을 하고 있다.
  • 모래말. 사촌(沙村)
    • 함안조씨가 개척한 마을이며 모래가 많아 모래마을이라 했다 한다. 일설에는 1936년 수해로 마을이 모래더미가 되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도 하는데 모래마을이 변음되어 모래말이라 부르게 되었다.
  • 봉대(鳳台)
    • 봉황대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봉대하라고 불렀다 하며 일설에는 옛날 이 마을 송림에 봉이 서식하여 봉소(鳳巢)가 있는 대라는 뜻에서 봉대라고 부른다.
  • 갱빈마. 강변
    • 평성 동쪽 냇가에 있는 마을로 윤씨. 최씨. 이씨 등 7가구가 살고 있다. 강변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강변마을이라 부르던 것이 변음되어 갱빈마가 되었다. 옥계리. 능치리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며 용문산 기도원으로 통하는 도로변이기 때문에 교통은 비교적 편리하고 주로 농업에 의존하고 있으나 최근 복합 영농으로 목축을 비롯하여 과수원 조성 등 소득 증대에 힘쓰고 있는 마을이다(강대봉 <77> 외 3명).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능치리

예로부터 도요지가 많은 것을 미루어 보아 오래된 마을로 여겨진다. 1568년 평택임씨가 입향하였으나, 거의 떠나고, 몇 집만이 살고 있다. 1578년 경주최씨 진반이 황금면 반수에서 이주하였다. 능청 마을은 1889년 밀양박씨 형희가 공성 영오에서 이주하였고, 황산여씨와 풍양조씨 양문도 일찍 들어와 살았다.

능치 1리는 능점. 능청 두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졌으며, 조선시대 초에는 어모현에 속하였다. 1416년 김산현이 승군됨에 따라 본현을 흡수하고, 김산군 구소요면과 아천면을 통합하여 어모면이라 개칭하고 그 관내가 되었다.

1949년 군을 금릉이라 개명하고, 1971년 능청. 능점을 합하여 능치 1동으로 나누었고 1988년 동을 리로 바꾸었다. 어모면 소재지에서 북으로 10km 떨어진 산간 오지에 있는 두 마을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두 마을의 거리는 800m 정도이며, 능청(能靑)에는 초등학교와 보건진료소가 있다. 동쪽은 옥계리에 인접하고, 북쪽은 깊은 골짜기로 능치 2리에 이어지고 서쪽은 충북땅인 황금면으로 이어진다. 능치 혹은 능점. 능청에서 능(能)-계의 지명을 볼 수가 있는데 이는 곰을 뜻하는 말이다. 능치란 우리말로 곰재 혹은 곰티라고 풀이하면 옳을 것으로 본다. 대구의 능성도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여기 곰에서 말소리가 바뀌어 어모가 된 점에 대하여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 능점(能店). 옥계(玉溪)
    • 옛날에는 도자기점이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며, 능점은 도자기로 능히 점(店)을 이루었다는 뜻이고 릉점은 도자기가 능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또 계곡에 큰 담소가 있어 옥소라 하는데 물빛이 금빛찬란하여 천지가 다 변하는 듯 하여 옥같이 맑은 소리가 난다는 뜻이라 하며 그로 인해 이 계곡을 옥계라 한다.
  • 능청(能靑)
    • 능점 동쪽 숲이 우거진 곳이라 해서 능청이라 했고, 현재 능치초등학교가 있는 마을로 박씨. 최씨 등 여러 성씨가 모여 산다.
  • 도치랭이. 도치랑(都治良)
    • 최근까지도 이곳은 옻이 많이 생산되어 옻칠하는 행랑, 즉 도칠랑이라 하던 것이 변음되어 도치랭이가 되었고, 1779년 무렵 박치란 유생이 도치랑으로 고쳤다 한다. 연대 미상이나 이곳에 사찰이 있어서 과거 준비하던 유생들이 공부를 했다 하며, 여기서 조금 내려오면 양질의 사기가 생산되었던 사기점골이 있다.
  • 용문산 기도원
    • 1800년 무렵 박송이란 유생이 산세를 보고 용문산(龍門山)이라 한 곳이나, 1940년경 나운몽 목사가 입산하여 애향숙(愛鄕塾) 기도원을 세우고 용문산(龍門山)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으며, 하느님은 그를 찾는 자는 누구나 다 용납하고 만나 준다는 뜻이라 한다. 면소재지에서 12km 떨어진 삼산유곡이나 300여 가구에 1000여 명이 상주하고 있으며 전국의 신도 3만여 명이 연중 행사로 기도대집회를 연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도암리

720년 김씨 세우가 합천에서 이주하였으며, 1740년 성산이씨 사신이 남면 연명에서 이거하였고, 1810년 김해김씨 노식이 입거하였다. 1825년 밀양박씨 재근이 선산 무을에서 입주하였으며, 여양진씨는 1840년에 입향하였으며, 1849년 밀양박씨의 석호가 선산에서 이주하여 마을이 이루어졌다.

도암 1리는 비점 한 마을로 되어 있으며 조선시대 초에는 어모현인데, 김산현에 정종의 어태를 봉안함으로써 군으로 되어 어모현을 없애고 김산군에 흡수되었다. 이 고장은 1416년 구소요면이 되어, 이 마을이 면 소재지가 되었다. 1914년 본리. 빈암을 합하여 도암동이라 하였고, 1949년 군을 금릉이라 하였다. 1971년 비점을 도암 1동으로 분등하고, 1988년 동을 리로 바꾸었다.

어모면 소재지에서 3번 국도를 따라 서북으로 4km 떨어진 곳이며 동쪽에는 비성천이 남으로 흐르고, 서편에는 경북선 철도가 있다. 철도를 건너면 장석 광산이 보이며, 그 길로 들어서면 야산지대에 있는 마을이다. 서쪽 멀리 비성산이 덕마리에 이르고 남으로는 은기리와 동파리에 인접하고 북쪽은 도암 2리와 구례리로 이어진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 능점(能店). 옥계(玉溪)
    • 옛날에는 도자기점이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며, 능점은 도자기로 능히 점(店)을 이루었다는 뜻이고 릉점은 도자기가 능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또 계곡에 큰 담소가 있어 옥소라 하는데 물빛이 금빛찬란하여 천지가 다 변하는 듯 하여 옥같이 맑은 소리가 난다는 뜻이라 하며 그로 인해 이 계곡을 옥계라 한다.
  • 비점(飛店)
    • 40여년 전까지도 양질의 옹기가 생산된 곳이며, 비점은 옹기점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아천에서 2km 북동쪽에 위치하며, 밀양박씨. 성산이씨. 김해김씨 등 80여 가구가 살고 있으며, 마을 입구에는 양질의 장석이 대량 출토되고 있다.
  • 구시리. 본리(本里)
    • 본래 이곳은 구소요면의 소재지로 구쇠리였는데 차츰 쇠가 변하여 구시리로 불리게 되었으며 본리는 동암리의 중심 부락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김해김씨가 주류를 이루고 그밖에 여러 성씨가 모여 50여 가구가 살고 있으며, 여기서 1.5km 정도 올라가면 근년에 창건한 도암사가 있다.
  • 빈지바우. 빈암(彬岩)
    • 구시리에서 약 400m 북서쪽으로 올라가면 빈암인데 뒷산인 난함산의 절벽 충암이 비가 온 뒤에는 번들번들 물기가 빛나는 빈지바위로 변하기 때문에 빈지바우라 부르게 되었고 한역하여 빈암이라 한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은기리

연대 미상이나 신기는 전씨, 은석은 남씨, 봉향은 김씨가 각각 개척하였다고 전해온다. 1618년 김해김씨 두산이 나주에서 신기로, 1702년 인동장씨 성웅이 상주 외남 내곡에서 은석으로 1711년 경주이씨가 선산 무을에서 봉황으로, 밀양박씨 광성이 용산에서, 1838년 김녕김씨 택진이 봉산 직동에서 봉황으로 각각 입향하여 그 자손들이 각 마을로 이주해 살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 은기리는 신기. 은석. 봉황 3개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김산군 구소요면에 속하였다.

1914년 신기. 은석. 중리. 봉항 4개 부락을 통합하여 은기동이라 하였고, 1934년 구소요면과 아천면을 합하여 어모면이라 칭하고 그에 속하게 되었다. 1949년 군명을 금릉이라 하고, 1988년 동을 리로 바뀌었다. 어모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4km 떨어진 산간지대에 있는 3개 마을로 3번 국도가 마을에서 서쪽으로 면 도로로 갈려 들어가면서, 길 옆으로 3km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서쪽은 난함산(733m)이 막혀 있으며, 북쪽으로는 도암리에 접하고, 남쪽은 동좌리에 이르게 되니 경북선 철도와 3번 국도가 된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 인수골. 은수골. 은석(銀石)
    • 불무골에서 약 300m 내려온 곳으로 마을의 지반이나 개천이 온통 백색 암석으로 덮여 있어 본래 은석골이라 부르던 것이 변음되어 인수골. 은수골로 되었다 한다. 김해김씨를 비롯하여 여러 성씨가 40여 가구 가량 살고 있으며, 포도와 기타 과실이 많이 생산되고 표고버섯 재배와 양봉을 많이 한다.
  • 불무골. 봉항(鳳項)
    • 옛날 이 마을에 대장간이 있었서 불무골이라했으며. 봉황은 봉이 알을 품은 듯한 모양 같다 하여 뒷산의 이름을 난함산이라 하고 마을은 봉황의 목에 해당한다 하여 봉황이라 이름을 지었다. 원래 이 마을은 약 300m 남서쪽에 있었으나 병자년 수해로 마을이 매몰되고 많은 희생자를 내어 마을이 없어지고 현재의 위치로 이주해 살게 되었다. 난함산의 이름에서 정보 초점이 되는 부분은 함(含)인데 이는 옛날 한자음이 '감 ' 이었다. 감이란 감천의 감과 다르지 않아 물신 혹은 땅신을 이름이다. 곧 거북신을 품었다는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동좌리

오래전부터 전씨가 살았다고 하며 400년 묵은 노목을 미루어 보아 오래된 마을로 여겨진다. 벽진이씨가 하로에서 이거하였고, 경주김씨도 일찍 입향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1776년 영월엄씨 광우가 상주 청리에서 이주하였고, 1804년 성산이씨 명희가 감문 황세올에서 좌동에 잠깐 머물렀다가 이 마을로 이주하였고, 1830년 평택임씨 성화가 김천 지좌에서 입향하였고, 1850년 성산배씨 이수가 개령 대광에서 이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동좌리는 마존. 동리 두개 마을로 이루어졌으며, 조선시대 초에는 어모현이었으나, 1416 년 김산현이 군으로 되매 이 마을은 천하면에 속하였다. 1914년 김천으로 군이름을 고치고 1920년 천하면. 천상면을 합하여 아천면이 되고, 좌동을 합하여 동좌동이라 하였다. 1934년 아천면. 구소요면을 통합 어모면 동좌동이라 한다.

1988년 동을 리로 바꾸었다. 어모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800m에서 2.5km쯤에 자리 한 두개 마을인데, 3번 국도는 동편에, 경부선 철도는 남북으로 관통한다. 동리 마을 앞에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으며, 동남으로 큰 들이 있고, 어모천이 남쪽으로 흐르며, 서로는 은기 리이고, 북으로는 도암 1리에 인접하고 동쪽은 덕마리에 이른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 마지미. 마존(麻存)
    • 동리에서 남서쪽 1km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아천 뒷산과 동리 남서쪽 산이 마치 사다리같이 뻗어 있다. 마지미는 뫼지미의 변음으로 뫼는 산이요, 지미는 언지리 또는 사이라는 뜻으로 산과 산 사이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며, 마존은 음을 따서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벽진이씨 등 각성이 30여 가구 살고 있다.
  • 동뫼. 동미. 동리(東里)
    • 면 소재지 아천에서 2km 떨어진 곳이며 윗마을 은기동에서 동쪽 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동뫼라 부른 것이 변음되어 동미라고 부르며, 이곳에 어모중학교와 어모초등학교가 있다. 마을에 큰 느티나무 네 그루가 높이 25m 정도의 거목으로 장관을 이루어 여름철 동민의 피서지가 되며, 봄에 느티나무에서 새 잎이 동시에 피면 풍년이 들고, 그렇지 않으면 흉년이 든다고 지금도 동민들이 믿고 있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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