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쉬는 우리고장 대항면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403에 있는 도리사에서 출토되었다. 도리사는 직지사와 함께 묵호자와 동일인으로 알려진 아도화상이 신라 눌지왕대에 창건하므로서 신라불교의 초전지인데 이곳에 있는 세존사리탑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이 사리함은 신라 8세기의 전형적인 금동사리함으로 판명되었는데, 도리사 창건이래 전래되었던 불사리를 금동6각사리함과 함께 조선시대의 석종부도에 봉안한 것이 이번에 세상에 들어 났다.
출토된 사리는 도리사 세존사리탑에 봉안하고 금동6각사리함은 동국대학교에서 보관하다가 1995년 10월 17일 직지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직지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석가여래삼불회도는 조선 후기 후불도로 중앙의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좌측의 약사여래설법도(藥師如來說法圖), 우측의 아미타여래설법도(阿彌陀如來說法圖)로 구성돼 있다. 현존 삼불회도 중 3폭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작품으로 세관과 신각, 밀기 등의 화승들이 1744년에 완성해 직지사 대웅전에 봉안했다.
조선 후기에 유행한 공간적 삼불회도의 전형으로 평가받는 불화로, 장대한 크기에 수많은 등장인물을 섬세하고 유려한 필치로 장중하게 그려낸 것이 특징이다. 다른 불화의 화기는 화승들의 명단과 순서를 적는데 비해, 이 작품의 화기는 역할에 따라 차례를 구분하고 화승들 뒤에 소속 사찰을 병기하고 있어 화승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사찰 입구 사적비 부근에 있었던 금당 유허지에 있었는데 1979년 약사전을 신축하여 비바람을 막았다. 1955년 국보 제475호로 지정되었다가 1963년 국보와 보물로 구분되면서 보물 제319호로 재지정되어 현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불상은 불신과 광배가 화강석의 한 돌로 조성되고 결가부좌와 항마촉지인에 약호를 든 약사여래불상이다. 주형의 광배 안에는 당초문을, 외연부에는 화염문을 배치하고 목 부위와 드리워진 법의자락이 화려하다. 정좌한 무릎과 전체가 균형잡인 비율로 배분되어 아름답고 양감이 두드러지나 파손이 심하여 얼굴표정을 읽을 수 없어 안타깝다.
원래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에 있었던 도천사 자리에 파손, 산재해 있던 것을 1974년 직지사 주지 오녹원이 이곳에 옮겨 원형대로 복원하였고, 탑봉 상륜부는 1976년 전문가(한수영 박사)의 고증으로 복원되었다.
8개의 석주와 8면의 석판으로 된 초대위에 4개 석주와 4개 석판으로 정방체를 이룬 탑신이 조화를 이루어 안정감을 주는 거탑이다. 1층과 2층은 6단, 3층은 5단으로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통일신라시대 도선국사가 조성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대웅전앞 삼층석탑과 마찬가지로 원래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 둿산에 있었던 도천사 유허지에 도괴된 채 산재한 것을 1974년 직지사 주지 오녹원화상이 이곳으로 옮겼다.
상륜부는 없어져 1980년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탑의 규모가 크고 전체적으로 조형미가 우수한 작품으로 대웅전앞 삼층석탑과 수법이 같으며 한 사람이 조성한 것으로 보이며 상세한 유래는 알수 없으나 도선국사가 도천사를 창건할 때에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735년(영조 11년) 대웅전 중건 때 진기 지영 두 스님이 불화를 그리기 시작하여 9년만인 1744년(영조 20년) 5월에 완성 봉안했다.
중앙의 그림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문수· 보현 두보살과 범천· 제석천 및 십대제자를 배치했다. 좌측 그림은 약그릇을 든 약사여래가 중앙에 안좌하고 주위에 일광 ·월광 등 8보살과 사천왕 12신장이 에워쌌다. 우측 그림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음· 세지 등 보살과 신장들이 둘러싼 구도이다.
전체적으로는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안정감이 있고, 비범한 묘사와 정교한 장식 표현은 생동감이 있으며, 주위에 그려진 범서가 특이하다.
원래 구미시 선산읍 원리 강창마을에 있었던 강락사터에 도괴된 채로 있던 것인데, 1968년에 구미시 선산출장소(전 선산군청) 마당에 옮겼다가 1980년 현 위치로 옮겨 세웠다. 상륜부와 상대갑석 및 상대중석은 직지사에서 문화재 전문의원(유문용)의 고증을 거쳐 새로이 조성 교체하고 석난간을 설치했다.
1474년(성종5년) 세조빈 정희대왕대비가 성종비 공혜왕후 한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새긴 목판을 16세기 초에 해인사에서 인출한 책이다.이 불경의 원간본은 아미타불을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며 여러 악업을 참회하고 보리심을 내어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법회 절차를 적은 것이다. 판본은 전10권 중 권6~10의 5권 1책인데 간행 시기가 없어 정확한 간행 동기나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각수의 이름이 새겨진 것으로 보아 성종비 공혜왕후의 명복을 빌기위해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권 10 끝에는 학조대사의 발문이 있는데 이에 따르면 해인사 소장각 판목에서 인출한 초쇄본으로 보고 있다.
사찰 입구 사적비 부근에 있었던 금당 유허지에 있었는데 1979년 약사전을 신축하여 비바람을 막았다. 1955년 국보 제475호로 지정되었다가 1963년 국보와 보물로 구분되면서 보물 제319호로 재지정되어 현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불상은 불신과 광배가 화강석의 한 돌로 조성되고 결가부좌와 항마촉지인에 약호를 든 약사여래불상이다. 주형의 광배 안에는 당초문을, 외연부에는 화염문을 배치하고 목 부위와 드리워진 법의자락이 화려하다. 정좌한 무릎과 전체가 균형잡인 비율로 배분되어 아름답고 양감이 두드러지나 파손이 심하여 얼굴표정을 읽을 수 없어 안타깝다.
경북 예천군 감천면 중거리 184번지에 위치한 한천사에서 출토되었다. 한천사는 신라 문무왕 18년(678년)에 의상조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1988년 가을에 사내 조경공사를 하던 중 금동 자물쇠 등 일괄 4점이 출토되었다. 자물쇠 3점은 (1)길이 30cm, 폭13cm(두개의 연결고리가 부착되어 있고 열쇠 구멍은 왼쪽이다. (2)길이 18cm, 폭4cm (3)길이 18cm, 폭 5cm 이고 청동반자는 지름 39cm, 두께 1.3cm 구경 23cm 이다. 이 밖에 파손된 용뉴는 높이 11cm, 폭 15cm로 청동 자물쇠와 함께 나왔다. 이 출토물은 1995년에 이곳 직지사의 성보박물관으로 옮겨져 소장하고 있다.
직지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려 후기 불서이다. 삼국 시대 불교 유입 초기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으며, 지눌이 불교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입법을 위해서 반드시 『금강경』을 읽게 한 뒤부터 널리 유통되었다.
권수에는 불상과 관음보살상이 각각 금니로 묘사되어 있고, 권말에서 시주지와 사성연대를 알 수 있다. 고서체는 고려말에 일반적으로 쓰여진 안진경체로 쓰여졌으며, 당시의 불교신앙의 일단면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인도의 학승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하고 송나라의 승려 계환이 해설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은 『금강경(金剛經)』, 『화엄경(華嚴經)』과 더불어 대표적인 대승 경전의 하나이다. 『묘법연화경』은 “백련꽃과 같이 올바른 가르침을 주는 경전”이란 의미로 천태종의 법화 사상을 담고 있어 흔히 『법화경(法華經)』으로도 부른다. 직지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묘법연화경』은 2001년 1월 2일 보물 제1306-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 되었다.
김천 고방사 아미타여래설법도 1688년에 조성된 고방사의 후불화로서, 민원(敏圓)을 수화승으로 하여 죽총(竹䕺), 경찬(竟粲), 각림(覺林) 등 총 4명의 화승이 그렸다. 수화승 민원은 17세기 후반에 활약한 화승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전하는 작품은 이 작품이 유일하여 작품의 가치를 한 층 높여준다. 함께 화사로 참여한 각림은 1656년에 조각승 무염과 더불어 완주 송광사 소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오백나한상을 조성한 경력을 갖고 있다.
붉은색과 녹청색을 주조색으로 하고 그 외에 황토색과 백색 등을 이용하여 채색한 불화인데 존상의 표현과 채색의 운용 방식, 구름의 표현 등이 특징적이다.
대웅전의 중건과 함께 제작된 17세기 중반을 대표하는 목조 불단이다. 수미단을 통해 하늘과 땅과 바다의 경계가 없는 이상향을 동식물로 표현하고 있으며, 불(佛) 세계를 향한 대중들의 부처님에 대한 믿음과 바람을 보여 준다.
1668년 작품으로 보이는 삼존불상과 벽화·단청, 그리고 1744년 삼존후불탱화와 함께 예배대상과 한 세트를 이루며 조성된 점에서 조선후기 불전 건축의 내부 장엄을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김천 직지사 괘불도는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괘불도이다. 사찰의 야외 의식에서 주존불의 기능을 하는 대형 불화로 1803년에 조성되었다.
보관을 쓰고 두손으로 연꽃을 받쳐 들고 정면을 향해 당당하게 서 있는 독존형식의 장엄신 괘불도이다. 19세기 불화를 대표할 만큼 우수하다고 평가되는 작품으로 19세기 괘불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높이 12m 이상 되는 대형 불화임에도 불구하고 도상의 배치, 상․하축의 조형성, 색채감과 선묘 등 여러 면에서 상징성이 있는 작품이다.
김천 직지사 소조사천왕상은 1665년에 조각승 단응(端應)과 전주 송광사의 승려들이 제작한 작품으로,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덧붙여 만든 소조상(塑造狀)이다.
천왕문의 진입문 우측에는 보검을 든 동방지국천왕과 비파를 든 북방다문천왕이, 좌측에는 용과 여의주를 든 남방증장천왕과 보당과 보탑을 든 서방광목천왕이 배치되어 있으며, 크기는 4.5m에 달한다.
김천 직지사 소조사천왕상은 보존상태가 우수하고, 제작연도가 명확하여 17세기 천왕상의 기준이 되는 작품으로서 조선 후기 사천왕상의 형식과 양식 변천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김천 직지사 천왕문은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1596년(선조 29) 임진왜란 때 왜적의 방화로 직지사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천불전, 자하문과 함께 피해를 입지 않고 유지되어 오다 1665년(현종 6) 사천왕상을 새로 조성하기 이전에 중건(重建)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조로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보은 법주사 천왕문 다음으로 큰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어칸은 통로로 사용되고, 좌·우 협칸에는 1665년(현종 6) 전라도 송광사 승려 화원이 조성하여 보물로 지정(‘23.10.27)한 소조사천왕상이 각각 봉안되어 있다.
우리나라 천왕문 중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천왕문이라는 점과 지붕가구, 공포형식 등에서 17세기 건축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당대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과하주는 수백 년 내려온 김천의 유명한 술이다. 찹쌀과 누룩을 원료로 하며, 김천시 남산동에 있는 과하천(過夏泉)의 물을 사용한다. 이 샘물로 술을 빚으면 술맛이 좋고 여름이 지나도 술맛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여 과하주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다른 지방사람이 이곳에 와서 과하주 빚는 방법을 배워가서 똑같은 방법으로 아무리 빚어봐도 과하주의 맛과 향기가 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물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금릉승감』에 적혀있다.
김천 지방의 과하주는 인절미와 수곡 형태의 전처리 과정을 거쳐 술을 빚고, 저온에서 장기간 발효·숙성시킨다는 점에서 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감칠맛이 뛰어나며, 저온에서 장기간 발효시키는 까닭에 특별한 청량감을 느낄 수가 있다고 한다.
화강암으로 조성된 아담한 이 나한상은 호랑이를 어르는 모습인데, 원래 인천시 강화도 전등사에 있던 것을 1996년에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수장하였다. 전하는 말로는 서운선사(瑞雲禪師)의 원불(願佛)이라고 한다. 당당한 기품과 사실적인 표현기법으로 보아 고려문화 절정기인 인종∼의종 연간에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크기는 전체높이 45㎝, 머리높이 16㎝, 머리너비 11㎝, 어깨너비 17㎝, 무릎너비 28㎝, 무릎높이 11㎝로 직지사에서 소유 및 관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