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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천리석조관음보살입상
    덕천리석조관음보살입상 이미지
    • 지 정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50호,1990.8.7
    • 위 치 : 김천시 봉산면 봉산1로 160 [용화사]
    • 창건연대 : 고려초기
    • 규 모 : 넓적한 화강암에 양각불상고 2.73m,어깨폭0.9m

    고려초기의 불상으로 가까운 어느 골짜기에 있던 것을 1927년 이곳으로 옮겼다. 머리에 상층정자관형의 보관을 썼고 통견의를 걸쳤으며 다리 양쪽에는 손에 약호를 든 동자상을 새겼는데 이는 유래없는 형식으로 특이하다. 광배는 주형이고 두광과 신광은 쌍선으로 양각했으며 그 외측구에는 화염문, 내측구에는 꽃무늬로 채웠다.
    머리에 비하여 몸통이 짧아 균형을 잃었고 이목구비가 도식적이긴 하나, 온화한 얼굴 표현과 간결한 선의 처리는 시대 양식을 충실히 반영하여 고려 초기의 입상임을 말해주고 있다.
    용화사는 이 석불로 인하여 창건 되었다.
    이곳으로 옮겨진 석불상에 비바람을 막으려고 전각을 지어 그안에 봉안하고 예불을 올리니 곧 용화사의 시발이 되었다.

  • 정부인 문화류씨 묘지명(贈 貞夫人 文化柳氏 墓誌銘) 지석(誌石)
    정부인 문화류씨 묘지명(贈 貞夫人 文化柳氏 墓誌銘) 지석(誌石) 이미지
    • 지 정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92호, 2006.10.16.
    • 소 장 : 창녕 조씨 문장공파 대종회
    • 소 재 : 경북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 수 량 : 2점
    • 돌의종류 : 전판암
    • 크 기
      - 가로 35.7 Cm, 세로 41.7Cm, 두께 3Cm
      - 가로 36.4 Cm, 세로 41.9Cm, 두께 3Cm

    증 정부인(贈 貞夫人) 문화류씨(文化柳氏)는 울진현령등을 지낸 증 이조참판(贈 吏曹參判) 조계문(曺繼門)의 부인이자 문장공(文莊公) 매계(梅溪) 조위(曺偉)선생의 어머니이며 영남사림의 종사(宗師)이자 거봉인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선생의 장모로서 1495년(연산원년)에 69세를 일기로 봉산면 봉계(현 율수재위치)에서 돌아가셨을 때 전라도 관찰사로 재직중이던 아들인 매계 조위(曺偉)선생이 서울에 호조판서 허백당 홍귀달(洪貴達) 선생에게 편지를 보내 어머님의 명(銘)을 지어달라 부탁하여 받은 묘지명(墓誌銘)을 돌에 글씨를 써서 새긴 후 대항면 복전리 말개미 마암산(馬巖山)에 묘소를 쓰면서 무덤앞 상석 밑에 묻어 두었는데 2001년 6월에 묘소 보수작업을 하던 도중 상석밑에 있는 것을 발굴하여 창녕조씨 문장공파 종중에서 보관해오다가 2005년 9월 13일부터 10월 31일까지 국립대구 박물관에 전시(김천편)후 현재 계속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 태화리석조보살입상
    태화리석조보살입상 이미지
    • 지 정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9호, 1994. 4. 16.
    • 위 치 : 김천시 봉산면 태화리
    • 연 대 : 고려 전기

    이 불상은 김천시 봉산면 태화1리 양지마 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불상 높이는 85∼90㎝정도로 보살상의 조성 양식이 특이하고 조각 기법이 우수한 편이다.
    광복 직후까지 어느 보살이 조그마한 암자를 짓고 부처님을 모셔오다가 암자가 허물어지고 석불만 남아 건물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국도 건너 음지마는 가매기라는 마을로 옛날 가막사라는 절이 있어서 불려지는 마을이름인데 이곳에는 가막사의 유물로 보이는 석탑이 마을 옆 포도밭에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석불은 가막사에 속한 암자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불상에 불공을 들이면 득남한다는 소문이 있어 근래까지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었다.

  • 영천이씨정려비
    영천이씨정려비 이미지
    • 지 정 : 경북문화재자료 제387호
    • 연 대 : 2000년 9월 4일
    • 소 장 : 영일정씨 선전공파 종중
    • 소재지 : 경북 김천시 봉산면 신리
    • 시 대 : 조선시대
    • 크 기 : 전체 높이 108cm, 비신 너비 44cm, 비신 두께 21.5∼22cm
    • 분 류 : 석비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鳳山面) 신리(信里)에 있는 조선시대 비석.
    2000년 9월 4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387호로 지정되었다. 정유재란 때 왜군의 능욕을 피해 28세의 나이로 자결한 이씨 부인(1570∼1597)에게 나라에서 내린 정려비이다. 이씨 부인은 경상북도 영천의 찰방(察訪) 이대유(李大有)의 딸로 태어나 봉계마을(현 신리)의 영일정씨 선전공파 문중으로 시집을 왔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남편 정유한(鄭維翰)은 선전관으로 출정하였고, 이씨 부인은 피난을 가다가 왜군에게 붙잡혀 희롱당하던 중 몸을 더럽힐까 염려하여 은장도로 자결하였다. 이 때 야욕을 채우지 못한 왜군은 칼과 활로 부인의 육신을 난자하였다고 한다.
    이에 이씨 부인이 죽은 지 36년 만인 1633년(인조 11)에 나라에서 절부(節婦) 칭호를 내렸고, 향리에서는 부인이 순절한 자리에 정려비를 세우고 그 앞에 우물을 파서 귀감이 되도록 하였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이 우물을 현지 주민들은 "빗지거리 샘"이라고 부르는데, "비(碑) + 집(閣) + 거리(道) + 샘"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1892년(고종 29) 12월에는 부인 이씨가 숙부인(淑夫人)에 추증되었고 정유한은 통정대부 이조참의(通政大夫吏曹參議)에 증직되었다.
    정려비는 화강암을 거칠게 다듬어 만들었는데, 비신(碑身)과 좌대(座臺)가 하나의 돌로 되어 있어 특이하고 상단의 모서리는 둥글다. 비신 앞면에는 "節婦鄭維翰妻孺人永川李氏之閭崇禎七年甲戌三月日(절부정유한처유인영천이씨지려 숭정칠년갑술삼월일)"이라는 글이 3행으로 음각되어 있다.
    비신 높이 84cm, 너비 44cm, 두께 21.5∼22cm이며, 바닥 위로 드러난 좌대는 높이 24cm, 너비 56cm, 두께 32cm이다. 정려비를 보호하고 있는 비각은 1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옆면에 비바람을 막기 위해 박공널을 달았고 자연석 주춧돌 위에 지름 약 28cm의 두리기둥을 세웠다. 정면 벽은 홍살문으로 되어 있으나, 1985년 경에 보수하면서 원형이 훼손되었다. 나머지 3면은 흙벽인데, 벽면의 높이 3분의 2 지점에서 지면에 이르는 부분을 바깥쪽으로 돌출시켜 비바람에 잘 견디게 하였다.
    정면 처마도리에는 나무로 된 정려편액이 가로로 걸려 있다. 원래는 비각 내부 뒷벽에 걸려 있었으나 홍살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아 이곳으로 옮겼다. 이씨 부인의 12세손인 정인영(鄭寅永)이 관리하고 있다.

  • 율수재(聿修齋)
    율수재(聿修齋) 이미지
    • 지 정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41호, 2008.09.18.
    • 위 치 : 봉산면 인의리(봉계) 769
    • 창건연대 : 1686년(숙종12년) 4월

    조선조 제9대 성종때 성리학의 대가이며 대문장가인 문장공 매계 조위(文壯公 梅溪 曺偉)선생의 유허지(遺墟址)에 건립하여 현재 창녕조씨(昌寧曺氏) 문장공파(文莊公派)에서 관리하고 있다.
    율수재 입구에 자헌대부 의정부좌참찬겸세자우빈객 문정공 도암 이재(文正公 陶菴 李縡)선생이 찬(撰)한 매계선생 신도비(神道碑)가 세워져있고 1980년부터 김천문화원에서 선생의 높은 학문과 덕을 기리고 학생들에게 계승발전을 시키고자 매년 경상북도단위 행사로 이곳 율수재에서 「매계백일장」을 개최하고 있으며 1989년12월 문화공보부에서 선생의 생가 유허지임을 표시하는 표석 와비(標石 臥碑)를 세웠다.

  • 용화사(龍華寺)
    용화사(龍華寺) 이미지
    • 위 치 : 봉산면 덕천1리 (봉산1로160)
    • 창건연대 : 1747년(영조23년)
    • 창건자 : 박광명화(양덕보살)

    고려시대 각인되었던 미륵불을 조선조 초기에 정부의 억불정책으로 도로변에 방치된 것을 1935년 법명을 백병서(본명 백낙준)란 불교신도가 생남 기원 불공 중 미륵불을 풍우로부터 가리워 달라는 성몽을 실천하여 용화사를 건립하였다.
    1945년 조국 해방과 더불어 김천 성내동 신도 김명화씨가 칠성각, 대웅전, 요사대 등을 중건하여 사찰의 면모를 갖추었고, 1962년부터 대한불교 조계종 8교구 말사로 등록되었다.

  • 김시창 정려각(金始昌 旌閭閣)
    김시창 정려각(金始昌 旌閭閣)이미지
    • 위 치 : 김천시 봉산면 신암리 산 67-10(신암1리 고도암 마을입구)
    • 창건연대 : 1558년(명종13년)

    해풍김씨 남정 김시창은  1472년 대항면 덕전리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남정, 시호는 효절이다. 모친이 별세하자 3년간 시묘살이를 하고, 성종, 중종, 인종 세 임금의 국상때마다 3년간 상복을 입고 도성을 향해 절을 해 충절로 이름이 나 1558년(명종13년) 효절이라는 시호와 함께 정려가 내려졌다.

  • 조응방 효자 정려각(曺應邦 孝子 旌閭閣)
    조응방 효자 정려각(曺應邦 孝子 旌閭閣) 이미지
    • 위 치 : 봉산면 신리(송정) 403-6
    • 창건연대 : 1812년(순조12년)

    창녕조씨 조응방(曺應邦)은 1695년(숙종21년)에 통덕랑 조계서(通德郞 曺啓瑞)의 아들로 봉계에서 태어났으며 자(字)는 제겸(濟兼)이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부인 창녕 성씨 또한 효성이 지극하여 도내에서 다들 "그 지아비에 그 지어미"란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선고(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3년시묘를 끝내니 향리에서 칭송이 자자하였고 유림에서 상소하여 1812년(순조12년)에 나라에서 정려(旌閭)가 내려져 마을앞에 효자비를 세우고 비각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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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담당자 : 봉산면 / 054-430-0301
    • 최종수정일 : 2017-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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