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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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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리

조선시대에는 개령현 동면 대동(한골)이었으나, 1914년에 대동과 동신동을 합하여 대신동으로 개칭하고 동면을 폐합하여 아포면 소관이 되었다. 같은 해 경부선 철도개통으로 대신역이 신설, 가구 증가로 2개동으로 분동되고, 1935년 대신 1동에서 또 한동이 분리됨으로써 역전이 2동, 동신이 3동으로 분동되었고, 1988년 동을 리로 개칭하였다. 대신 1리는 아포면 서쪽 끝 부락으로 동쪽은 건영산, 남쪽은 봉화산을 경계로 남면 봉천리(천동)과 초곡 1리, 서쪽은 덕산을 경계로 초곡 2리(서원), 북쪽은 개령면 서부리와 서동류하는 감천이 면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감천 하안에 외송(바실)평야와 대동지, 못밑들(평야)과 마을 주변 산지하에는 전지가 산재해서 영농상 전답이 고루 형성되어 있다. 부락 북편에 경부선 철도와 김천 - 구미간 지방도 및 경부고속도로등이 동서로 관련되어 교통상으로 편리하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① 함골. 대동(大洞)

조선 말엽 개령군 동면에 속해 있었으며 개령초등학교 뒷산은 굶주린 호랑이가 개를 잡아 먹으려고 움추린 형상이며, 현재의 대신 2동 앞산은 개가 앉아 있는 형상인데, 개를 잡아 먹으려는 범을 잡기 위하여 함정을 파놓았다 하여 이 마을을 함골이라고 불렀다. 그 후에 현재의 대신 1동을 대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② 역전(驛前)

함골. 대동에 속해 오다가 일제 때에 경부선 철도가 개설되자 마을이 분리되었는데, 역이 있기 때문에 역전동이라고 불렀으나, 1920년에 대신 2동으로 나누어졌다

③ 시내이. 동신(東新)

파평윤씨가 신행이란 곳에서 처음 마을을 개척하여 살아왔으나 주민들의 성품이 사납고 알력이 심하여 부락터가 거세다고 현재의 마을로 이주하여 새 부락의 마을이름을 동신이라고 불렀다. 시내이란 말은 파평윤씨가 현재의 마을로 이주한 후에도 예전에 살았던 곳의 지명인 신행이를 그대로 따와서 계속 사용해 왔는데, 신행이의 발음이 바뀌어서 시내이로 되었다고 한다.

대신이라는 말도 대동과 신행이의 각 머리 글자를 따와서 대신이라고 했으며, 마을이 생긴지는 약 400년 쯤 되었다.

(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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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담당자 : 새마을문화관광과 / 420-6731
    • 최종수정일 : 201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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